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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인간 기억의 불완전성에 대한 영화. 영화 "죽이고 싶은"을 보고

by 은빛연어 2010. 8. 26.

죽이고 싶은
감독 조원희,김상화 (2009 / 한국)
출연 천호진,유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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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해진과 천호진이라는 배우를 정면에 내세운 영화는 장르가 모호하다. 예고편만 본다면 코메디 영화라는 생각이 들지만, 막상 영화를 보면 영화의 장르를 한마디로 정의할 수가 없다. 오히려 예고편의 편집은 낚시라는 생각이 정도로 예고편과 본편은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작품이다. 예고편으로 만들어진 기대감으로 작품을 본다면 커다란 실망감을 않고 극장을 나올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최소한의 정보와 최소한의 기대로 영화를 감상한다면 색다른 매력을 느낄 작품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병원과 병실이라는 좁은 공간에서 펼쳐지는 배우들의 연기에는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천호진이란 배우는 김민호라는 인물이 병세가 조금씩 호전되어 가는 과정을 실감나게 연기한다. 처음에는 입이 많이 돌아간 상태로 발음조차 들지 않게 등장하는데, 조금씩 입이 돌아오는 과정이나 발음이 점차 개선되는 과정 등을 보면 감탄할 밖에 없다. 다른 연기 잘하는 배우 유해진의 연기도 천호진에 비해 모자람이 없다. 신체의 움직임이 불편한 환자, 그리고 병실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가 조금도 지루하지 않는 것은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의 설정은 영화의 역동성을 많이 잡아 먹어버린다. 사람이 서로를 죽이려는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영화의 아기자기함을 더하기에는 충분하지만, 사람의 불편한 움직임 만큼 영화가 정적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준다. 동적인 느낌이 없기 때문인지 몰라도, 사람의 대결이 펼치는 치열함은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영화도 강렬한 인상을 주지 못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영화 전체적으로는 다양한 복선들을 심어서 남자의 대결에 의외의 반전을 남긴다. 처음에는 남겨진 복선들이 관객들에게 너무나 친절하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 뻔하다는 생각이 정도의 복선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마지막의 반전은 관객들의 예측을 크게 흔들어 버린다.(내가 똑똑하지 못해서 인지도 모르겠지만…) 뻔한 복선들에서 예측되어지는 반전을 깨어버리는 결말은 정적으로만 느껴졌던 영화의 활기를 불어넣는다. 영화 전반부에 나왔던 다양한 복선들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만들고, 복선으로 예측했던 반전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어준다. 영화의 러닝타임 대부분을 감정이나 동요 없이 보고 있던 관객에게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는 결말이랄까?

 

 그런데 영화의 색다른 매력은 영화 마지막의 반전이 아니다. 영화가 소재로 삼고 있는 인간의 기억에 대한 묘사라고 해야할까 설명이라고 해야할까? 아무튼 인간 기억의 불완전성을 이야기 속에 담아내고 있다는 것이 영화의 매력이다. 인간이라는 동물이 아주 이기적이라서 자기가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고, 기억 조차 자신에게 유리하게 기억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영화는 기억이 완전하지 않은 남자를 통해서 그런 인간의 특성을 치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래서 영화 속의 남자가 가지는 복수와 증오의 감정이라는 것이 허무하게 느껴지는데, 사실 그런 일들이 일상 다반사가 아니던가? 영화에서 처럼 우리가 가지는 증오와 복수의 마음은 우리의 불완전한 기억이 만들어낸 것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