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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설

'베오울프' 노무현, '그렌델' 이회창 그리고…. 괴물 드래곤'이명박'

by 은빛연어 2007. 11. 24.
 

 괴물이 괴물을 만들어낸다. 괴물의 원천은 욕망이다. 욕망은 돈과 권력, 그리고 욕정이다. 정의라는 단어는 그런 욕망의 유혹 앞에서 너무나 쉽게 좌절한다. 완전하지 못한 인간이기에 불완전한 생명체 인간이기에 욕망의 유혹은 언제나 달콤하고 매력적이다. 하지만, 욕망에 굴복해 욕망의 괴물이 되고 , 욕망의 괴물은 다른 욕망을 쫓는 불나방들을 끌어들인다. 불나방들은 괴물만 꺽으면 자신들이 마치 영웅이 처럼 생각하지만, 그들 또한 욕망의 유혹에 넘어간 욕망을 탐하는 작은 괴물들일 뿐이다. 작은 괴물은 욕망의 괴물을 넘지는 못한다. 오히려 욕망의 괴물이 세상의 악을 물리치는 영웅이 되어 버린다. 욕망의 괴물은 모든 것을 가졌기에 자신의 권력과 돈을 관대한 처럼, 자상한 처럼, 베푸는 처럼 보이도록 무지한 백성들을 현혹시킨다. 무지하고 어리석은 백성들은 괴물을 왕으로 영웅으로 모시지만, 괴물은 그저 백성을 위한 존재가 아니라 자신을 위한 존재일 뿐이다. 뿐만 아니라 욕망의 괴물은 강력한 욕망의 괴물을 만들어 낸다. 자신의 욕망이 그대로 투영되어 강력해진 욕망의 괴물을……. 자신의 적자인 괴물이 부활하고 활개치면서 그의 가련하고 무지하고 어리석고 없는 불쌍한 백성들은 고통을 받으며, 죽기도 한다. 괴물의 정체를 모르는 무지의 백성들은 다시 그들의 왕이나 다른 용사가 영웅이 되기를 구세주가 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괴물을 처치하기 위해서 나타난 왕과 용사는 욕망에 굴복한 다른 괴물일 뿐이다. 거절할 없는 치명적인 유혹에 무릎 꿇을 밖에 없는 하찮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하찮은 인간을 만들어 또한 권력과 돈과 공포 앞에서 무조건 머리 숙여 영웅이 나타나기만을 바라는 어리석은 백성들이기도 하다.

 

 "베오울프" 영웅이 것은 자신이 만들어 하나의 괴물을 자신이 없앴기 때문이다. 선왕 "호르트가르" 돈과 권력 그리고 욕정에 취해서 무기력하고 나태해져 자신이 만들어낸 괴물을 "베오울프" 처단하도록 했지만, "베오울프" 자신이 만들어 괴물 앞에 죽어가고 고통 받는 백성을 외면하지 않고, 직접 싸웠던 것이다. 당장의 앞의 공포에 두려워하는 나약한 백성들은 그가 이겼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영웅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진정한 괴물 욕망은 어느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는다. 욕망이 만들어 내는 새로운 괴물이 나타나면 괴물을 없애줄 영웅만을 기다릴 뿐이다. 기존의 영웅은 사람들과 사람들 사이의 입과 입으로 전해며 잊혀져 , 새로운 영웅을 기다리고 찬양한다. 이런 순환의 고리는 어리석고 욕망에 약한, 불완전한 인간이 존재하는 계속 반복된다. 이런 순환의 역사는 영웅과 괴물을 구분하지 못하고 공포와 권력 앞에서 나약한 우둔한 백성들이 존재하는 계속 반복된다.

 

 우리는 지난 대선으로 노무현을 "베오울프" 만들어 냈다. 부패하고 권위적이며 기득권의 이회창이라는 괴물 "그렌델" 물리친 "베오울프" 영웅이 되었다. 그리고 "베오울프" 나라의 최고권력을 얻었다. 어리석은 백성은 그가 휘두르는 칼이 부패하고 썩어빠진 곳을 시원하게 드러내기를 바랬다. 그리고 치열한 전투로 혼란한 민심을 하나로 묶어 두기를 바랬다. 하지만 "베오울프" 역시 욕망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유혹에 타협하며 처음 칼을 들었을 때의 이상과 정의감은 희미해졌다. 전투에 패했던 괴물들이 최후의 발악을 했던 탄핵이라는 거대한 파도를 넘으며 "베오울프" 그의 신하들은 의회의 힘까지 장악했지만, 그들의 이상과 정의감은 공허한 메아리였을 뿐이다. 정의감에 넘쳐서 세상을 바꾸기 위해 필요한 권력은 그들이 막상 권력을 얻게 되면서, 그들은 욕망의 권력에 취해버렸다. 백성을 위한다는 명분은 그저 명분일 뿐이다. 말로 백성을 현혹시키기 위한 술수일 뿐이다. 그들은 그저 권력에 취해있고 싶어서, 그들은 그저 우월감을 있는 권력을 휘두르고 싶어서 뿐이다. 실현되지 않는 명분과 말뿐인 공허한 명분으로 백성들은 힘들다. 영화 "베오울프" "그렌델" 팔을 잘라 괴물을 죽음으로 몰고갔지만, 현실의 베오울프는 "그렌델" 이회창을 죽이지도 못하고 잠시 잠들게만 만들었다. 그리고 자신이 욕망의 괴물이 되어 버림으로써 "그렌델"에게 부활의 힘을 제공했다. 그리고 자신이 투영되고 자신의 잘못된 욕망은 새로운 욕망의 괴물의 씨앗이 되어버린다. 영화 괴물 드레곤은 베오울프가 씨앗이요 자양분이 되어 만들어내지만, 현실 최대의 괴물 이명박은 정신마저 썩어가는 우둔하고 어리석은 백성이 자양분이 되어 버렸다. 비리가 넘쳐나는 최악의 괴물이 돈이라는 것에 눈이 멀어버린 우리의 욕망을 자양분 삼아 본색을 드러낸 것이다.

 

 백성을 우리를 이끌 적당한 인물이 없는 현실 속에서 어쩔 없는 선택을 강요하기 때문이라고 변명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괴물들을 키워온 것은 우리들이요, 제대로 인물을 키워오지도, 찾아보지도 못한 것이 우리들이다. 명백한 법적인 범죄보다, 실망과 배신감의 상처를 크게 생각하는 어리석은 우리들. 범죄와 신의라는 단어에서 객관화해야 문제를 객관화해서 생각하지 못하고, 그저 개인적 심적인 감정으로만 우리는 신의를 저버린 , 죄를 최악의 죄로 단정해 버린다. 그런 주관화의 치명적인 실수는, 개인적 감정을 객관화한 치명적인 실수는 괴물의 탄생을 만들어 뿐이다. 그저 괴물의 권력에 돈에 머리를 숙이며 , 들은 하려는 노예근성 앞에서 영웅은 리더는 결코 탄생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괴물의 앞에서 지배당할 뿐이다. 역사의 악순환은 영원히 계속될 뿐이다. 이런 악순환을 끊어 버리는 것은 영웅도 위대한 용사가 아니라 국민과 백성이고, 이어야 한다. 욕망의 괴물들이 이상 번성하지 않게, 욕망의 불나방들이 이상 번성하지 않게,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우리의 몫이요, 백성들의 몫이다.

 

 "베오울프" 같은 영웅의 탄생을 기다리는가? "베오울프" 죽어서 영웅이었는지는 몰라도 살아서는 자신의 욕망을 위한 하나의 괴물이 였다. 남의 부인을 탐하고, 나중에 조강지처를 버리고 젊은 여자에 빠진 색의 욕망에 물든 괴물. 그리고 자신은 드레곤이라는 괴물을 만들어 무지하고 순진한 백성들을 죽음으로 몰았던 괴물이 였다. 영웅은 없다. 단지 영웅의 탈을 인간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인간이 괴물이 되는 것도 순간이요. 찰나의 순간이다. 영웅이란 나약하고 무기력한 다수 인간들의 비겁함과 노예근성이 만들어낸 허상일 뿐이다. 세상을 바꿀 있다는 의지, 두려움에 굴하지 않는 용기, 잘못을 잘못이라 당당하게 말할 있는 진실한 마음이 있다면 그대와 내가 바로 세상의 영웅이고 주인이다. 언제까지 누가 나서서 세상을 바꾸어 주기를, 언제까지 누가 나서서 살게 해주기만을 바랄 것인가? 그것도 인간이 아닌 괴물을 통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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