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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설

권력을 생각하다.......

by 은빛연어 2007. 11. 11.
 

 대선을 앞두고 있다. 서로들 나라의 최고 권력자가 되기 위한 야망을 앞세워 국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아무나 쉽게 꿈꾸지 못하는, 아무나 쉽게 얻지 못하는 나라의 최고권력이 무엇이기에 동지마저도 적이 되고 적이 동지가 되어 버린다. 정책이나 공약은 뒷전이고 서로의 숨기고 싶은 치부마저도 낱낱이 파헤쳐, 자기도 상처 입을지 모르는 네거티브라는 검의 날을 잡고 휘두르기 바쁘다. 독이든 성배와 같은 권력의 마력이 무엇이기에 은퇴했던 노장 정치인은 다시 독이든 성배를 얻기 위해서 진흙탕으로 번째로 뛰어들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성숙해야 정치의식이건만 시간이 흐르면서 성숙(?)하는 것은 권력이라는 불을 향한 불나방들의 숫자다. 늘어나는 불나방에 비해서 국민들의 정치의식은 정체하거나 퇴행하고 있다. 정치에 대한 혐오와 무관심은 불나방 숫자보다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이것이 불나방들이 노리는 전략과 전술일지도 모르겠지만…….  국가의 주인이자 최고 권력자는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아니라 국민들이라는 사실은 교과서에만 강조하는 얘기가 되어버리는 현실이 서글프다. 권력의 대리자요 권력의 대행자인 자리가 마치 권력과 동일시 되는 현실은 국민의 정치의식을 얕보는 정치인들이 투영한 그들의 그릇된 욕망인데, 그릇된 욕망을 나무라고 질책해야 국민들은 투영된 잘못된 이미지를 그대로 현실로 받아들인다.

 

 권력 앞에 줄서기 위해서, 권력을 돈으로 좌지우지 하기 위해서 궁리하는 박쥐 같은 군상들이 마음껏 활개치고, 그들이 저지른 죄에 대한 대가마저도 돈과 권력으로 면죄 받는 것이 가능한 그곳이 지금의 개한민국이라는 곳이다. 번을 반복해온 박쥐들의 행태가 단절되지 않고, 오히려 박쥐는 가면을 바꿔가면서 시대의 권력자와 권력 앞에서 마음껏 날아다니며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는다. 죄에 대한 단호한 단죄가 필요함에도 박쥐의 앞에서 정의와 원칙은 언제나 흔들린다. 이번에 다시 박쥐의 범죄에 대한 양심선언이 나왔건만, 과연 개한민국국민들은 박쥐에 대해서 단죄를 원할 것인가? 국민이 원한다고 해도 박쥐의 돈에 무릎 꿇은 개한민국의 법과 정의가 단죄를 있을 것인가?

 

 권력이란 국민에 의한 것이요, 국민을 위한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종교인에 의한 것이고, 종교인을 위한 것이 되었는가? 속세의 그릇됨을 비판의 칼날을 가하고 속세의 그릇됨을 정화시켜 무릉도원과 같은 곳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종교인들이 아니 였던가? 오히려 종교인들이 부패하고 속세에 찌들어 자신들의 종교를 위한 권력을 만들려고 하니 개한민국은 종교인마저도 타락하는 곳이다. 개한민국은 종교인마저도 타락하는 곳이 아니라, 개한민국의 권력은 종교인마저도 타락하게 만드는 곳이다. 국가의 최고권력 뿐만 아니라 대학교를 차지하기 위한, 제주도의 절을 차지하기 위한 그들의 타락한 속세의 욕망을 보면서 권력과 종교인의 관계는 모든 종교에 공통적이라는 현실이 서글프다.

 

 자신이 죽을지도 모르는 권력이라는 불을 향한 불나방들의 향연은 불의 빛으로 어둠을 몰아내는 모습과 불의 열기로 온기를 전해주는 모습을 위한 것이 어야 함에도, 개한민국의 불나방들은 붉은 빛으로 활활 타오르며 꼬리치는 욕망의 모습을 위한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개한민국의 국민은 불의 밝음과 불의 온기를 느껴본적이 없다.

 

Ps> "권력의 조건" 서평을 쓰려다가 엉뚱한 곳으로 빠져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