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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영화의 전당에서 다시 본 영화 "렛미인"

by 은빛연어 2011. 12. 28.

 올해 부산 국제 영화제는 시간이 나지 않아서 참여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에 개관한 "영화의 전당"을 버스로 지나쳐 갈 때 잠시 봤을 뿐 실제로 방문할 일이 없었다. 지금 개관 기념 영화제를 하고 있지만, 관심이 가는 영화는 시간대가 맞지 않아서 내년에나 한 번쯤 "영화의 전당"에 가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런데 문득 신문의 한 켠에 배우 이나영이 직접 GV에 참여하는 코너가 있다는 토막기사를 보게 되었다. 영화는 개인적으로 다시 보고 싶었던 영화 "렛미인". 그리고 날짜를 보니 기사가 나온 날로부터 일주일 후 였다. 부랴부랴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으로 표를 예매하기 위해 사이트에 접속했다.

 

 다행이 매진은 아니고 오른쪽 끝 맨 앞자리 2자리가 남아있었다. 영화 보기에 좋지 않은 자리라 예매하는 것을 포기하고, 혹시나 모를 취소표를 기다리며 그 때부터 매일 사이트를 들락날락 거렸다. 어떤 날은 완전히 매진이고 어떤 날은 간혹 한자리가 취소되어 예매 가능했지만, 좌석이 좋지 않아서 포기하기를 반복했다. 디데이를 2~3일 앞두고 그렇게 좋은 자리는 아니였지만, 영화 감상하는데 별무리가 없어 보이는 한 자리가 남아있는 것을 발견하고 급하게 예매를 했다. 나이 값도 못하고 여배우 보러 가겠다고 그렇게 눈을 켜고 예매하는 내 모습이 문득 우습게 보였지만, 그래도 기쁨이 그런 생각들을 순식간에 날려버렸다.

 

 디데이 날. 영화의 전당이 바다에 가깝다 보니 가뜩이나 추운 날 바람마저 매섭게 몰아친다. 화려한 조명으로 반짝이는 "영화의 전당"을 향해서 걷는데 조명있는 곳을 제외한 건물의 웅장함은 어둠이 집어 삼켜버린다. 첫 방문이다 보니 입구를 찾지 못해서 건물을 반바퀴나 돌아서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어둠으로 인해 알아 볼 수 없었던 외관에 비해 건물의 내부는 복잡함과 처음 보는 낯설음이 잠시 걸음을 멈추게 만든다. 고개를 좌우로 돌려 건물 내부의 모습을 보면서, 낯선 곳에서 갈 길을 찾지 못한 당황스러움을 진정 시켰다. 그 사이 나의 길을 인도 해줄 빛과 같은 안내판을 찾았다. 안내판의 지시를 따라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6층으로 이동하면서 유리 벽 사이로 보이는 외부의 야경과 현란한 야외 조명이 눈길을 사로 잡는다.

 

 그렇게 6층의 로비에 올라갔지만, 또 다시 당황스러움에 발길을 멈춘다. 발권기가 눈에 쉽게 띄지 않는다. 로비를 한 바퀴 돌고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면서 한 켠에 서 있는 발권기를 발견하고, 천천히 다가가 예매했던 표를 뽑고 이제 상영 시간만을 기다렸다. 상영관 입장 시간이 다가왔다. 또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간다. 처음 온 초심자임을 티내지 않기 위해서 앞에 가는 사람들의 꽁무니만 쫓아서 갔다. 조금은 복잡하게 이어진 길을 따라 상영관 입구에 도착해 무사히 자리에 앉았다. 조금 있으니 뒤쪽에서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뒤돌아보니 이나영이 입장해 영화를 감상하기 위해서 앉아있다. 신기해서 그런지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있고, 힐끔힐끔 계속 뒤돌아 보면서 이나영의 얼굴을 감상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게 잠시 소란스러워진 극장 안은 상영시간이 되자, 영화 평론가가 나오면서 잦아들었다. 간략하게 영화에 대한 소개와 영화 상영 후 있을 GV 진행에 대해서 말한 후 본격적인 영화 상영이 시작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영화 "렛미인"을 너무 좋아한다. 영화에 반해서 헐리우드판 "렛미인"도 봤었고, 이 영화의 원작인 소설 "렛미인"도 사서 읽었다. 소설 "렛미인" 같은 경우는 두 권으로 이루어진 두꺼운 책이다 보니 영화에서 보다 많은 내용을 포함하고 있고, 이엘리와 오스칼 그리고 그 주변 인물에 대한 상세하게 묘사 되어 있다. 영화가 여백의 미를 활용해 이엘리의 신비로운 매력을 극대화하고 관객들로 하여금 무한한 상상력을 펼치게 만든다면, 소설은 그 여백들을 상세하게 채워준다. 영화를 보고 궁금했던 것이나 그냥 내 상상만으로 채웠던 것들을 더 명확하게 만들어준다. GV시간에 이나영은 그냥 영화가 주는 느낌이나 감동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소설은 안 읽었고, 앞으로도 안 읽을 것이라고 했는데... 영화의 그 느낌 자체가 좋은 사람에게 소설은 분명 그런 단점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이엘리에 대한 궁금증이 더 큰 사람이라면 소설은 궁금증을 충분히 해소 시켜준다.

 

 영화 "렛미인"을 보고 소설을 읽고 나중에 헐리우드판 "렛미인"을 봤었다. 소설을 읽고 얼마 안 있어서 헐리우드판 "렛미인"을 봐서 그런지 몰라도 헐리우드 판 "렛미인"은 상당히 실망스러운 작품이었다. 원작의 신비로운 매력이나 느낌은 사라지고, 조금 색다르게 리메이크 된 영화는 상당히 이질적으로 다가왔다. 영화 "킥애스"를 보고 반했던 배우 클로이 모레츠가 나온다고 해서 기대를 했었지만, 원작 영화에서 이엘리를 연기했던 리나 레안데르손의 중성적인 매력에서 풍겨나오는 신비로움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듯한 느낌에 실망했었다. 이엘리라는 캐릭터는 원작에서 단순히 이쁘게만 묘사해서는 안되도록 설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리메이크라는 것이 원작의 복제가 아니라 재해석이라는 것을 이해하지만, 기본 원작의 설정에서 이엘리를 설명하는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라는 점에서 본다면 아쉬운 부분이다.

 

 이런 상태에서 시기적으로 이젠 기억이 희미해 단순히 느낌만 남아 있는 원작 영화를 다시 보는 것은 또 색다르게 다가왔다. 단순히 같은 영화를 두 번 보는 것이라면 조금 더 영화를 상세하게 깊이 보는 것에 머무르겠지만, 원작과 헐리우드 판 영화를 비교하면서 영화를 보게 되었다. 머리 속에서 사라졌다고 생각되었던 영화에 대한 기억들이 새롭게 솟아나기도 했지만, 처음 봤을 때 영화에 여백으로 남아 있던 공간들을 소설 속 이야기로 채워 넣는다. 그러다 보니 영화에 숨겨진 여백의 의미들이 더 눈에 들어왔다. 영화의 시나리오를 소설의 원작자가 쓴 것이다 보니 원작을 전혀 훼손하지 않으면서 원작에서 보여지는 가장 매력적인 장면들과 이야기들을 그대로 영화로 옮겼다는 것을 장면 장면에서 느껴진다.

 

 이엘리가 내밷는 "나는 여자아이가 아니야" 같은 한 마디의 대사나, 이엘리가 옷을 갈아 입을 때 오스칼이 훔쳐보는 장면에서 잠깐 스쳐 지나가는 장면들이 눈에 들어오면서 이엘리의 정체성에 대해서 작가는 원작의 설정을 완벽하게 은유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잔인하고 끔찍한 이엘리의 과거를 완벽하게 표현하지는 못했지만, 그 장면을 상세하기 본 사람이라면 이엘리의 과거를 다양한 형태로 상상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다. 이런 식의 장면들 소설에 표현되어 있지만, 영화에는 은유적으로 밖에 표현할 수 없었던 것들이 얼마나 섬세하고 원작자가 표현하고 있는지 눈에 들어온다. 그런 섬세함과 절제 된 묘사가 이 영화의 또 다른 매력이라는 것을 이번에 다시 보면서 알게 되었다. 봤던 영화를 다시 보니 어떤 부분에서는 조금 지루하기도 했지만....


 그렇게 영화가 끝나고, 처음 받을 때와는 또 다른 감동과 느낌을 간직한 채 시작된 GV는 영화에 대한 느낌과 감상을 들려준다. 영화의 느낌을 상당히 중요시 하는 듯한 이나영의 이야기는 배우만이 감수성 같은 것들을 느끼게 만들어 준다. 나와 다른 느낌에 대해서 알게 되고, 때론 내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그리고 내가 놓쳤던 장면들에 대한 느낌과 감상은 영화를 다시 곱씹어서 생각하게 만들어 준다. 좀 더 영화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감상을 듣고 싶었는데, 어느 순간 GV는 이나영에 대한 신변잡기와 근황으로 이어진다. 영화에 대한 감상과 느낌에 더 빠져있고 싶은데, 조금씩 환상을 깨어 버린다. 이나영이라는 배우에 대해서 궁금해 하는 팬들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아쉬움이 큰 GV이다. 하지만, 이 영화를 다시 보면서 또 몇 일 동안 이엘리 알이에 빠질 것 같다.

렛 미 인 - 10점
토마스 알프레드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