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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지금의 현실은 헉슬리가 그린 미래가 되어간다. 책 "멋진 신세계"를 읽고.

by 은빛연어 2010. 5. 3.
멋진 신세계 외(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31-1)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올더스 헉슬리 (범우사, 199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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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가타카" 주인공은 꿈이 우주비행사다. 하지만, 유전자 검사를 통과하지 못해서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한다. 유전자에 의해서 자신의 꿈과 지위가 이미 결정되어 있는 사회적 구조 속에서 그의 꿈은 이루지 못하는 꿈이 아니라 처음부터 꿈조차 없는 꿈이다. 자신의 신체적 능력은 유전적으로 우수하다는 동생을 뛰어넘음에도 불구하고, 유전자 검사로 정해진 자신의 운명에 벗어날 수가 없다. 그래서 그는 불의의 사고로 휠체어에 의지해 살아가는 다른 사람의 유전자를 이용해 자신의 신분을 속이고, 가타카에 들어가 우주비행사가 되는 과정을 밟는다.

 

 그렇게 올더스 헉슬리가 그린 "멋진 신세계" 속의 부분이 영화 "가타카" 그대로 재연되었다. 게놈 프로젝트로 이미 인간의 모든 유전자 정보가 해석되어 있는 지금, 우리는 이런 가상의 이야기들이 언젠가는 실현될지 모르는 현실을 살고 있다. 이미 태어나면서부터 부모의 능력에 따라서 교육격차게 생기기 시작한 현재를 넘어, 계급을 최상단을 차지하려는 욕망이 지속적으로 분출된다면 언젠가 우리는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영화 "가타카" 같은 곳을 만나지 않을까?

 

 그렇다고 지금의 현실이 과연 "멋진 신세계" 차이가 있을까? 헌법조문을 외우면서 만인이 평등하고 외쳐보아도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돈과 권력으로 보이지 않는 계급으로 나뉘어진 현실은 우리가 부정하려고 해도 쉽게 부정할 수가 없다. 아파트 계급으로 대표되는 사람들은 자신들만의 세계를 구축해, 다른 계급의 사람의 침입을 쉽게 허용하지 않는다. 아파트 값을 담합해서 경제적으로 다른 계급이 쉽게 진입하지 못하도록 막고, 아파트 값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주는 시설이라도 생기려고 치면 부녀회를 중심으로 즉각 실력행사를 한다. 자신들의 세계가 누군가에 의해서 침범 당하는 것을 쉽게 용납하지 못한다.

 

 그래서 인지, 계층을 걸쳐서 처절한 계급투쟁은 지속된다. 연대를 통한 삶의 질을 추구하기보다는 경쟁을 통한 삶의 욕망을 추구한다. 욕망을 누구나 채울 있다면 좋겠지만, 적은 자리를 두고 치열하게 싸움을 벌인다. 그러다 실패하면, 다시는 회복하지 못할 상처로 인생의 낙오자 또는 실패자라는 낙인 속에 살아야 한다. 자신이 실패자가 되었다면, 자신의 꿈은 그의 자식들에게 투영한다. 그래서 치열한 학업경쟁 속으로 자식들을 몰아넣는다. 아이들은 학교와 학원을 빙빙 돌면서 배움을 얻기 보다는 시험의 기술, 정답을 찾는 기술만을 배울 뿐이다.

 

 그런 현실에 비해서 어쩌면 "멋진 신세계" 경쟁의 소용돌이 속에 사람이 살지 않아서 좋을지 모른다. 계급은 유전자 검사로 결정되고, 교육은 수면학습을 통해서 일방적으로 전수 받으면 끝이니까. 아이들은 학교와 학원으로 빙빙 필요도 없을 것이고, 치열한 경쟁의 스트레스에서 완전히 벗어날 있을 테니까. 그래서 그런 세뇌에 가까운 일방적인 교육으로 인해서 각각의 계급에 속한 사람들은 현실에 안주하며 불평불만이 또한 없다.

 

 비판적 사고능력을 완전히 거세 당한 사람들은 그냥 현실을 즐기면서 살뿐이다. 그들의 인생에 중요한 것은 자기 뿐인 존재들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깊지가 않다. 우정이라는 것의 의미도 중요하지 않고, 사랑이라는 것도 중요하지 않다. 단지 그들의 성욕을 해소하기 위한 방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관계는 중요하지 않고, 그저 그들의 삶이 그렇게 즐기기만 가능한 것은, 과학기술의 발달이 만들어낸 쾌거랄까? 출산에서 해방되고, 늘어가는 것에 해방된 사람들에게 삶의 다른 의미는 없는 것이 되어 버린 것이다.

 

 출산의 해방. 헉슬리는 멜서스의 인구론에 바탕으로 미래를 그려냈다. 기사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인구에 비해서, 산술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식량의 문제를 고민한 흔적이다. 인류를 출산에서 해방시키고, 인간을 시험관에서 필요에 따라서 생산하는 시스템. 그래서 어머니나 아버지란 존재가 사라졌다. 그렇게 인구를 조절해서 인류가 생존해야 것으로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현실은 멜서스와 헉슬리가 틀렸음을 보여준다. 그들이 예측한대로 인류의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지만, 식량생산 또한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지금 세계에 존재하는 빈곤과 가난은 생산력의 한계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탐욕스러운 기업과 인간이 만들어낸 결과일 뿐이다.

 

 즐기기만 하는 . 이것은 헉슬리의 뛰어난 통찰력이 보이는 부분이다. "멋진 신세계"에서는 소마라는 환각제로 고통과 현실을 잊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결혼이라는 제도의 구속이 없고, 사랑이라는 감정의 느낌조차 모르는 사람들은 성적 해방구로써만 이성적 만남이 존재한다. 삶의 의미라는 것은 자아실현이나 행복추구가 아니라 즐기기만 하면 되는 세상이 것이다. 포스터먼은 헉슬리의 이러한 통찰력을 이어받아, "죽도록 즐기기"라는 책으로 발전시켰다.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다양한 미디어와 오락물들로 인해서, 자유와 민주주의 그리고 정치에 대해서 방관과 무관심으로 사람들을 이끈다는 것이다.

 

 그러한 현상은 이미 지난 총선과 대선에서 우리는 경험했다. 젊은 세대로 갈수록 떨어지는 투표율을 비롯한 정치참여의 저조, 그리고 정치에 대한 혐오감과 불신의 만연. 그것이 현재 민주주의 국가가 직면한 하나의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세대들이 정치에 무관심해지면, 그들의 위한 공약이나 정치적 힘은 점점 약해짐은 물론이고, 차차 사회적 약자로 몰리게 된다. 그러한 것들은 지난 번의 선거에서 나온 20대들을 위한 공약이 뭔지 찾아보면 쉽게 있다. 아니면, 앞으로 지방선거가 다가오니 후보자들이 내놓는 20대에게 절실히 필요한 공약이 뭐가 있는지 관찰해보면, 그들이 정치에서 얼마나 소외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있을 것이다. 

 

 그렇게 헉슬리는 뛰어난 통찰력과 풍자로 미래의 모습을 소설로 그려냈다. 지금 보면 당연하게 생각되어지는 설정도 있고, 이미 이루어진 설정 같은 것도 존재한다. 하지만, 헉슬리가 예측한 미래의 모습은 계속 진행 중이다. 과학기술의 진보가 이루어낼 세상의 진보는 우리가 담담하게 맞이하면서, 긍정적인 세상으로 바뀔 있도록 노력해야 된다. 반면, 죽도록 즐기기에만 몰두할 세상의 진보에 대해서 우리는 좀더 많은 고민을 해야 시기에 직면했다. 살아있는 비판의식으로 정치와 민주주의 관심을 가지고 직접 참여해야 중요한 시기에 도래한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전한다고 해도, 우리가 맞이할 세계는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뿐이다. 우리의 방관과 무관심이 우리의 미래를 망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할 때다.

 

 ps> 헉슬리는 후에 "다시 가본 멋진 신세계"라는 책으로 자신의 예측에 대해서 해설서를 내놓는다. 권의 책으로 나올 만큼 방대한 내용으로 자신의 생각과 예측들 그리고 "멋진 신세계" 대한 해설들을 덧붙여 놓았다. "멋진 신세계" 풍자를 통한 은유적 기법으로 미래를 보여준다면, "다시 가본 멋진 신세계" 상세한 설명으로 이해를 돕는다. 범우사의 책은 두 책은 한권으로 묶어서 출간되었다.  같이 읽어봐야 책이다.


멋진 신세계 - 10점
올더스 헉슬리 지음, 이성규.허정애 옮김/범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