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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실패한 시장을 대체할 현실 기반 경제학은 뭘까? 책 "시장의 배반"을 읽고.

by 은빛연어 2012. 2. 23.

 우리는 눈 앞에서 시장의 실패를 경험했다. 탐욕스러운 시장을 그대로 방치했을 때 어떤 결과나 나타나는지를 눈으로 똑똑히 봤고, 점점 더 많은 경제적 어려움을 몸소 체험하고 있다. 탐욕스러운 대기업들은 시장의 원리라는 이상한 주장으로 중소상인들과 영세상인들의 영역까지 마수를 펼치고 있으며, 이익의 극대화라는 논리를 앞세워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그런 비정규직을 노예 부리듯 과도한 노동을 강요한다. OECD 최장 근로시간을 자랑하는 높은 노동량에도 불구하고, 법에 정해진 최저임금 조차 받지 못하는 열악한 환경에 있는 노동자들이 넘쳐 난다. 시장의 원리라는 이유로 그들은 법에 정해진 최저임금 조차 보장 받지 못한 것을 항의하지도 못한다. 시장에는 그들을 대체할 노동력이 넘쳐 나기에, 그나마 있는 일자리를 잃을 수도 있다는 현실적 불안감에 침묵한다. 그런 식으로 탐욕스러운 기업이나 자본가들은 자신들이 불리하면 시장의 원리를 언제나 앞세운다. 사람들은 시장이라는 것이 마치 절대적인 가치나 되는 것처럼 생각해 그 논리에 그대로 수긍하는 경향을 많이 보인다

 

 우리 사회를 관통하고 있는 극단적인 이분법적 이념체제는 시장 규제의 필요성을 말하면 좌빨이라고 극단으로 몰아버린다. 실패한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성과 대책을 이야기하는 것 뿐인데, 마치 시장이라는 것 자체를 부정하는 것으로 인식해 버리는 것이다. 그쪽에서는 시장이라는 것은 신성하고 절대적인 것으로 보는 것 같다. 그래서 대기업에 대한 규제, 부동산에 대한 규제에 대한 법적 장치와 제도를 만들고자 한다면 반시장적이라는 말로 격렬하게 반응한다. 그들은 미국의 자유시장주의자들 처럼 시장의 자정능력을 믿는 것일까? 자세히 보면 그들은 시장의 자정능력을 믿는 것이 아니라 시장이 만들어 줄지 모르는 부를 믿는 것 같다. 경제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낙수효과를 마치 진리인 것 처럼 신봉하면서 대기업이 시장에서 마음 놓고 움직여야 자신에게도 떡고물이 떨어질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대기업의 시장 활동을 옥죄는 규제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보는 것 같다. 미국의 시장주의자들은 누구나 시장에서 노력만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아메리카 드림과 서부 개척시대의 프론티어 정신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면, 우리니라의 어설픈 시장주의자들은 강자에 대한 맹목적인 신봉과 그들에게 떡고물이라고 받아 먹으려는 거지근성이 결합한 이상한 형태를 띠는 것 같다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의 비리를 폭로했을 때, 삼성을 비난하기 보다는 김용철 변호사를 비난하던 여론과 논리는 우리나라의 어설픈 시장주의자들의 의식을 그대로 보여준다. 사회는 민주화를 위해 계속 진보해왔지만, 시장의 뒤에 숨어 있는 기업들은 여전히 비민주적일 뿐만 아니라, 비리를 저지를 기업이나 기업가를 쉽게 단죄하지 못하는 법 예외지역에 머무르는 경우도 그렇다. 그런 기업가들이 여전히 국민의 존경을 받는 기업가에 꼽히는 현실은 얼마나 우리가 시장의 원리를 왜곡해 이해하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현실은 이런데 mb 정권 초반에 전경련은 우리나라 경제교과서가 좌편향 되어 있다는 이념공세로 자신들의 취향에 맞게 경제교과서 수정에 앞장서왔다. 기업이 시장에서 이윤추구하는 것은 기업의 존재 가치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탈법과 불법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젊은 청춘들, 법으로 기업이 노동자를 함부로 다루지 못하게 한 것이 기업의 경영권침해라고 말하는 젊은 청춘들을 너무나 많다. 보통의 사람에게 자유가 있으면 책임이 따르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기업의 이윤추구의 자유에 대해서는 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언급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그들은 시장=기업이고, 시장과 기업은 인간 위에 있는 절대적인 가치를 지닌 존재로 보는 것 같다

 

 기업에 대한 비판적인 의식을 가지지 못하고, 인간의 가치를 폄하하게 만드는 경제교과서. 전경련이 좌편향이라고 지적하지만 실제로 얼마나 친기업적인 경제교과서인가. 물론 이런 경향은 우리나라만 있는 것이 아닌 것 같다. 노엄 촘스키 교수는 "현행 법률에 따르면 기업은 사람보다 훨씬 큰 권리를 누리는 법인격을 부여받지만 불법 체류자는 사람 대접도 받지 못합니다."라고 말한다. 시장주의를 앞세워서 개발도상국과 가난한 서민들을 수탈하는 악날한 다국적 기업들을 비판하면서 하는 말이다. 이 말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시장을 앞세우는 기업의 법인격이 천부인권을 넘어서고 있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시장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고 있는 다양한 경제적 행위나 문제들을 보면 인간의 존엄성을 뛰어넘는 기업의 법인격을 무수히 목격할 수가 있다. 돈 없는 세입자를 향한 자본의 폭력이 만들어낸 용산참사, 대기업을 무분별한 구조조정에 힘없이 당해야 만했던 노동자들의 현실을 보여준 한진중공업 사태나 쌍용자동차 사태 등등. 우리는 기업의 인격이 사람의 인격을 뛰어 넘고 있는 슬픈 시대를 무감각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살고 있다

 

 신격화 되어 버린 시장. 그리고 그 시장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기업은 시장의 신격화와 함께 인간의 가치를 넘어 버렸다. 대기업은 점점 더 거대해지고 있는데, 사람들은 점점 더 가난해지는 현실에 직면했다. 그러다 보니 복지에 대한 요구가 늘어나고 있고, 시장을 중요하게 외치던 여당마저도 당명을 바꾸고 복지를 새로운 화두로 내세우고 있다역사가 토머스 브래디는 제국주의를 비판하면서 "제국의 이익이 사유화된 반면 제국의 비용은 사회화 되었다"는 것을 지적했는데, 어설픈 시장주의자들이 지배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경제는 대기업의 이익은 사유화된 반면 대기업의 비용은 사회화 된 것 같다. 복지에 대한 요구는 대기업들이 시장을 황폐화 시키면서 만들어낸 반작용이고, 대기업들이 지불해야 할 비용을 사회가 부담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우리나라의 복지비용은 OECD 평균에도 못 미치는 열악한 수준이다 보니 복지에 대한 요구는 당연한 국민들의 권리이기는 하지만, 지금 불고 있는 복지제도에 대한 열망은 광폭한 시장의 반작용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기업은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이라 그들의 이익을 위한 사악한 행동마저도 그것의 존재 목적이라는 이유로 긍정하는 현실은 시장이란 무엇인지 처음부터 고민해야 될 이유를 말해준다

 

  "시장의 배반"은 경제학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는 애덤 스미스를 통해서 시장이 실체가 무엇인지 접근한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눈에 띄는 것은 애덤 스미스가 은행들에 대해서 가졌던 시각이다. 미국발 경제 위기의 과정을 보면 은행으로 대표되는 금융업이 만들어낸 시장의 광기이고 수 많은 신자유주의자들이 애덤 스미스가 말한 시장을 바탕으로 이런 논리를 펴고 있는데, 이 책에서는 애덤 스미스가 은행업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작을 가졌다고 주장한다. "그런 규제(은행들이 투기적 대출업체에 어음을 발행하지 못하게 하는)는 틀림없이 어떤 면에서 자연적 자유의 침해로 여겨질 것이다. 그러나 사회 전체의 안전을 위협하는 소수 개인의 자연적 자유의 행사는 전제적인 정부이든 자유로운 정부이든, 모든 정부법에 의해 제한 받고 있으며 또 그래야 한다. 불길한 확산을 막기 위해 방화벽을 의무적으로 세우게 하는 법률은 자연적 자유를 침해하는 것인데, 여기에서 제안하는 금융 거래의 규제도 바로 그와 같은 종류의 침해이다."라는 애덤 스미스의 말을 인용한다. 그러면서 "금융시장을 합리적이고 자정 능력을 가진 메커니즘으로 보는 시각은 최근 40년 사이에 만들어진 생각이다."라는 저자의 주장을 덧붙인다.

 

그렇게 저자는 경제학 교과서 속에 유명 경제학자들의 이론들을 탐구한다. 이 과정을 통해서 자유시장을 맹목적으로 옹호하는 학파와 학자들을 비판적으로 보면서 그들의 이론의 문제점들을 설명할 것 같지만. 저자는 비판적 시선보다는 중립적인 시선을 꾸준히 유지하면서 자유시장을 믿는 학자들이 내세우는 이론들이 얼마나 믿음직한 이론이었는지를 세심하게 보여준다. 경제학을 전공하지 않은 나 같은 사람에게 보기만 해도 머리 아픈 내용들로 내용을 전개한다. 그러다 보니 쉽고 편하게 읽지 못하고, 지루함과 어려움에 힘든 싸움을 하면서 한 장 한 장 넘기게 된다. 그렇게 시장에 대한 유토피아적 학문과 이론들에 대한 수업이 끝나면 대안적 경제학 이론들에 대한 탐구에 들어간다. 유토피아적 경제학의 모순과 한계를 인식한 경제학자들이 내놓은 이론과 분석을 통해서 현실적 경제에 대한 분석으로 접근한다. 그러면서 시장의 실패에 대해서 다양한 접근을 한다.

 

 "기후변화는 경제 분야에 험난한 과제를 던졌다. 기후 변화는 지금까지 본 것 가운데 가장 크고 범위가 넓은 시장 실패이다."라고 말하는 니컬러스 스턴을 비롯해, 저자가 알기로는 시장의 실패라는 말을 최초로 쓴 프랜시스 베이토가 분석한 시장 실패의 세 가지 원인인 "독과점, 공공재가 생산할 인센트브를 찾지 못하는 점, 과잉효과나 외부효과" 등을 상세하게 설명한다. 그렇게 다른 경제학자와 다양한 이론과 사례 그리고 최근에 많이 주목받고 있는 행동 경제학까지 보여주면서. 시장의 불안정성과 실패를 보여준다. 그리고 마지막에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학자 였지만, 미국발 금융위기를 통해서 다시 재조명 받게 된 하이먼 민스키의 '금융발안정 가설'까지 설명해준다. "민스키는 효율적 시장가설을 비판하면서, 자본주의 경제는 태생적으로 보수적인 재정에서 무모한 투기로 진행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렇게 지루한 경제학 역사와 이론 공부가 끝나면 본격적으로 미국발 금융위기를 분석하면서 유토피아적 시장을 주장하는 이들에 현실은 이렇다는 것을 설명한다. 머리 아픈 경제학의 역사와 이론 공부에 지친 사람들에게 이 부분은 반갑다. 이 부분에 대해서 이미 많은 책들에서 언급했던 내용들이 많아서 쉽게 읽히고 이해하기도 쉽다

 

 그렇게 저자는 유토피아적 경제학을 맹렬하게 비판한다. 그러면서 "개혁에 대한 정치적 의지가 꺼지기 전에, 월 스트리트의 위상을 바로 잡고 유토피아 경제의 대척점에 대한 현실 기반적인 경제학을 놓는 것이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단순히 유토피아 경제학의 실패를 지적하고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대체할 새로운 경제학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저자의 이러한 주장은 우리나라의 어설픈 시장주의자들이 쉽게 시장의 실패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것 같다. 대척점에 있는 북한이라는 나라가 보여주는 공산주의의 명백한 몰락과 한계로 시장주의가 최고라는 이분법적 믿음의 자리를 대체제가 아직 없기 때문에 그 믿음이 절대적일 수 밖에 없다. 결국 단순히 시장의 실패를 보여주면서 시장의 한계와 정부나 사회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으로는 그들을 쉽게 설득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의 믿음을 대체할 아니면 대척점에 서 있을 수 있는 새로운 현실 기반의 경제학에 대한 고민이 필요함을 이 책은 가르쳐 준다. 우리 사회의 고민 지점은 단순히 복지의 강화가 아니라 인간을 시장 앞에 세우고, 인간을 기업 위에 세울 수 있는 현실기반 경제학에 대한 연구다

 

시장의 배반 - 10점
존 캐서디 지음, 이경남 옮김/민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