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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에 해당되는 글 6건

  1. 2008/08/22 선과 악, 그 경계를 묻다. 영화 "다크 나이트"를 보고 (2)
  2. 2008/08/21 "관용" 그 힘을 보여주는 책 "제국의 미래"
  3. 2008/08/19 어느 나라의 공산당 창당을 보면서...... (2)

2008/08/22 22:39

선과 악, 그 경계를 묻다. 영화 "다크 나이트"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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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세상을 구분 짓는 행위를 통해서 동질감이나 일체감을 느끼지만, 반대로 이를 통해서 차별과 증오를 표출하기도 한다. 개인마다 폭넓고 다양한 생각의 차이를 무시한 , 각자가 가진 잣대로 상대방에게 묻는다. "너는 선이냐? 악이냐?" 편이면 너는 선이고 상대편이면 너는 악이다. 절대선과 절대악에 대한 명확한 기준은 없다. 모든 것은 언제나 상대적이다. 내가 있는 시간과 공간이 만들어낸 시대 정신에 따라서 언제나 변한다. 단지 나의 판단이 너와 나를 가르는 중요한 기준이다. 사회구성원들이 오랜 시간의 합의 걸쳐 완성해 놓은 법과 윤리라는 것도 각자의 상황에 따른 판단에 의해 좌지우지 된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절대적이고 명확한 기준이 아니라 동지와 적이다. 머리 숫자가 만들어가는 힘만이 선과 악을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해 버린다. 그것이 다수결이라는 이름으로 완성된 민주주의의 맹점이고 한계다.


 이런 한계 때문에 사회 구성원들에게 중요한 것은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역지사지의 정신이고 배려의 마음이다. 하지만 이기적인 유전자로 충만한 다수의 사람들은 나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충만하다. 이로 인해 만들어지는 사회는 점점 서로를 불신하게 된다. 법이라는 것은 사회를 지탱하는 하나의 기둥이기는 하지만, 위에 있는 것이 서로간의 신뢰다. 법은 사회의 모든 정의와 질서에 대해서 간섭하고 통제하지 못한다. 그래서 법이 보호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관습법이라는 것이 관습법이 보호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신뢰가 필요하다. 사회에서 신뢰의 상실은 법이 가지는 권위마저도 상실하게 만들어 버린다. 돈과 권력은 쉽게 결합하게 되고 온갖 편법을 통해서 법이 무력화 되는 것은 "식은 먹기" 때문이다.

 

 영화 "다크 나이트" 속의 고담시티는 모든 신뢰를 상실한 사회다. 범죄자들이 무서워서 또는 그들에게 매수 당해서 법의 권위는 완전히 상실한 사회다. 지방정부의 힘도 범죄 앞에서는 무기력하기만 하다. 고담의 시민들이 기다리는 것은 범죄보다 시민이 당당하게 살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줄, 어둠을 몰아내줄 구세주다. 그로 인해 폭력 앞에 굴복하거나 나약해져서 비겁해지는 각자의 본성은 반성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그것이 나약한 이들에게 또는 타인에게 2차적인 폭력을 가하는 추동력이 되어 버린다. 배트맨이란 존재는 악과 싸우기 위해서 어둠을 이용한다. 영화의 제목처럼 그는 "다크 나이트". 박쥐 가면 뒤에 숨어서 어둠과 맞서 어둠으로 대항하는. 그는 고담의 나약하고 비겁한 주민들이 마음속에 숨어 있는 다른 폭력과 악을 대신 표현하는 인물일 이다. 그래서 배트맨은 구세주가 되지 못한다. 어떤 때는 적으로 몰려버린다. 태생적 한계가 배트맨을 악과 선을 구분 짓는 선위에 있게 만들어 버렸다. 결국 사람들의 관점이 바뀔 때마다 상황이 바뀔 때마다 배트맨을 구별 짓는 행위는 언제나 변한다. 배트맨은 선과 악의 경계선 위에서 줄타기 곡예를 하고 있다.


 그에 반해서 조커와 하비 덴트라는 인물은 명확한 선과 악을 구분 짓는 인물들로 보인다. 검사인 하비 덴트는 고담의 시민들에게 빛과 같은 구세주다. 배트맨 또한 그를 자신을 대신할 백기사로 인정하고 그를 돕는다. 그라는 존재가 사회의 신뢰를 회복하는 구심점이 있는 인물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반면 조커는 중에 악이다. 같은 범죄자 무리에게도 서슴없이 공격을 가할 정도로 잔인하다. 그거 원하는 것은 돈도 권력도 아니라 그저 악에 대한 시험이다. 사람들이 가지는 악에 대한 기준이라는 것이 얼마나 하찮은 것이며, 하나의 동기가 있다면 절대 선하다고 평가 받는  인물마저도 악으로 돌변할 있음을 보여준다. 조커는 영리하게 서로에 대한 신뢰가 약한 인간들을 이용한다. 세상에 완벽한 인간이 존재하지 않기에 각자가 가진 약점들을 하나 둘씩 이용해서 그들에게 악을 행하게 만들어 버린다.


 조커의 영리함과 치밀함은 영화를 보는 내내 경탄을 자아낸다. 고인이 히스레저의 마지막 열정이 그대로 묻어나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의 연기는 무섭고 불쾌하나 캐릭터는 소름 돋을 만큼 매력적이다. 주인공이 배트맨이 아니라 조커라고 생각해도 정도다. 니콜슨이 연기했던 조커가 만화적 분위기를 바탕으로 약간의 과장과 판타지 요소를 가진 허구적 인물이었다면, 히스레저의 조커는 현실에 실존할 있다는 존재가능성이 드러날 정도로 사실적 인물이다. 그래서 조커가 주장하는 악에 대한 시선이 무섭게 다가온다. 이런 공포는 점점 늘어나는 묻지마 범죄를 비롯한 면식범에 의한 잔인한 범죄가 증가하는 현실의 반영으로 보인다. 그래서 영화는 만화라는 원작을 바탕으로 판타지적 작품이 아니라 리얼리티를 바탕으로 사실적 작품으로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어 버린다.


 그것이 조커가 만들어낸 악의 공포를 극대화한다. 바로 지금 옆의 누군가도 어떤 개기를 통해서 악으로 변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것은 경제 신용위기와 높은 인플레이션이 촉발한 고통과 신뢰에 대한 불신이 팽배한 사회현실과 맞물리면서 상승작용을 한다. 영화의 도입부에서는 황금만능주의가 만들어낸 탐욕과 배신의 과정을 보여주면서 범죄자들 간의 신뢰 상실만을 보여주다가 점점 범위가 확대되어 간다. 법을 수호해야 검찰과 경찰에서부터 평범한 일반 시민들까지 조커에 의해서 실험 당한다. 조커의 마지막 실험은 2가지로 표출된다. 하나는 일반인들과 범죄자를 대립적인 구조로 만들어서 신뢰를 시험한다. 다른 하나는 절대선이라는 평가를 받는 하비 덴트에 대한 실험이다.


 결국에 하비 덴트의 변화로 조커의 실험은 성공한 처럼 보인다. 절대선이라는 평가를 받는 사람도 언제든지 악으로 변할 있다는 사실을 조커가 증명한 것이다. 하지만, 조커는 가장 쉽게 성공하리라 생각했던 번째 실험에서 실패하고 만다. 실험의 조건은 범죄자와 일반시민이라는 선악의 명백한 이분법으로 구분되어 있다. 하지만 의외로 평범한 사람들은 조커의 생각과는 다르게 움직인다. 그들은 갈등을 하게 되지만, 마음 깊이 있던 신뢰를 꺼낸다. 조커의 실험에 놀아나지 않고 사람 사이의 신뢰라는 것을 재확인하게 된다. 학창시절 윤리교과서에서 배웠던 성선설의 확인이랄까?


  영화는 이분법적 선악구별에 의문을 제기한다. 누구나 선과 악의 경계선에서 변할 있음을 보여준다. 그것은 신뢰의 상실을 기반으로 아주 사소한 원인에서 기인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주로 선에서 악으로 변화는 암울한 모습을 영화 러닝타임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래서 관객들의 뇌리에 사회에 대한 절망감과 악의 강함을 심어준다. 하지만 영화의 결론은 사람들은 원래 선하다는 것은 조그만 신뢰만 있다면 선의 경계선을 지킬 있음을 보여준다. 선과 악의 이분법적 구분보다 중요한 것은 서로에 대한 신뢰,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선에 대한 신뢰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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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21 20:15

"관용" 그 힘을 보여주는 책 "제국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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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독도문제로 시끄럽지만, 일본의 제국주의적 야욕은 언제나 한국을 비롯한 동북아 국가들의 반발을 초래해 왔다. 그럴 때면 외신을 통해서 일본의 행태에 반발하는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동태를 수가 있다. 하지만 동북아의 국가이자 일본의 침략을 받았던 나라임에도 일본에 대한 분노보다는 친일적 행위로 일관하는 나라와 국민들이 있다. 크게는 중국이라는 하나의 카테고리에 넣을 있는 곳이기에 이런 반응은 의아했었다. 비록 중국과 얼마 전까지도 대립하며 갈등하던 국가였지만, 일본의 침략행위에 대해서 그렇게 관대할 있는지 의혹만 증폭될 뿐이다. 그래서 내가 내린 결론은 "우리나라처럼 과거사 청산에 실패한 역사로 인해서 친일파들이 나라의 모든 것을 장악했다"였다. 그렇게 대만이라는 나라를 보면서 우리 사회에서 암적 존재로 존재하고 있는 친일파들의 청산이 필요함을 다시 생각하게 했다.


 그런데 "제국의 미래"라는 책을 읽으면서, 대만이 일본의 침략에 관대했던 것은 친일파들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있다. 많은 나라들이 일본제국의 침략에 수탈당하고 착취를 당했다. 많은 생명들이 죽임을 당하고, 젊은 여성들은 성적노예가 되었으며, 젊은 남성들은 침략전쟁의 총알받이가 되었다. 반면에 일본제국의 식민지중에 유일하게 다른 정책이 펼쳐진 곳이 대만이라는 것이다. 책에서는 제국의 번영 조건을 "관용"으로 꼽고 있는데 일본제국이 유일하게 전략적 관용의 정책을 펼친 곳이 대만이라는 것이다. 그런 전략적 관용 정책의 효과로 인해서 일본제국주의를 찬양하는 현재의 유일한 국가로 대만은 남아 있으며, 일본의 극우파들이 역사왜곡을 일삼으면서 침략의 정당성을 주장할 인용하는 나라가 대만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관용"이라는 것이 어떤 작용을 했기에 모든 제국들의 번영조건에 들어가는 것일까? 저자는 "관용" 대해서 지금 우리가 인식하는 관용과는 다른 것이라고 말한다. 과거의 제국들이 존재하던 시대의 관용이라는 것은 시대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상대적 관용"이라고 주장한다. 그런 관점으로 제국이 되었던 나라들과 그렇지 못한 주변 국가들의 관용의 정도를 비교하면서 관용이 어떤 힘을 발휘하게 되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모순적인 것을 사실을 이야기하는데 제국 쇠퇴의 씨앗을 뿌린 것도 관용이라고 한다. 관용이 변화의 지점을 건드려서 반목과 폭력을 유발하면서 제국은 멸망하게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관용"이라는 관점을 가지고 시대를 풍미했던 제국들을 분석한다. 너무나 유명했던 제국들에서부터 학창시절 세계사 시간에 잠깐 언급되고 지나갔던 제국들까지 동서양을 통틀어서 "관용"이라는 관점으로 행해졌던 정치행위와 통치행위를 분석하고 있다. 저자의 분석을 보면 타민족이나 타종교에 관용적인 국가들이 발전의 동력을 많이 흡수하고 있는 것을 있다. 특히 중세 유럽 제국(스페인, 네덜란드, 영국) 탄생에는 언제나 유대인들이 역할을 하고 있는 재미있는 사실도 포함되어 있다. 대영제국의 경우에는 유대인들의 역할도 중요했지만, 그보다 중요한 역할을 스코트랜드인들이 했다고 한다.


 이렇게 제국들의 역사를 관찰해가면서 저자는 미국이라는 제국에 대해서 상당히 긍정적인 평가를 한다. 중국출신의 이민자로써 미국에 대해 상당히 관대한 평가와 결론을 내린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이민자들의 나라로 초강대국이 최초의 사례일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국가로 초강대국이 최초의 국가라는 것이다. 이런 관점 때문인지 9.11 이후에 보여준 미국의 이민정책에 대해서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한다. 그런 행위가 관용의 힘을 약화시킴은 물론이고 미국의 발전 동력인 이공계 이민자들의 유입마저 막는 결과가 초래한다고 보고 있다. 과거의 제국이 군사적 정복과 정벌을 통해서 구성되었다면, 현재와 미래에는 경제적 힘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이민에 대한 관용 중요한 힘이 밖에 없는 것이다. 


  책은 국가간의 경쟁에서 이기고 다른 나라를 압도하기 위한 제국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도 우리사회의 "관용" 대해서 다시 생각해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민이 아니더라도 대한민국 또한 많은 외국인들이 돈을 벌기 위해서 또는 한국을 배우기 위해 들어오고 있는 상황을 본다면 과연 우리는 그렇게 관용적인가? 같은 국민들에게도 그렇게 관용적이지도 못한데, 출신국가와 피부색으로 사람에 대한 차별의 행위는 얼마나 만연한가? 뿐만 아니라 여전히 존재하는 종교간의 갈등 그리고 남북한의 이념적 갈등. 나보다 못사는 사람을 돕기라도 하려고 하면, 분배정책이 문제가 있으며, 사회주의 정책이라고 비난하는 이들. 이런 것들은 분명 개인들의 의견이자 행동형태이다.


 개인의 관용부제로 일반화해서 국가적 관용의 부제로 몰아가서는 안되겠지만, 사회전체가 관용이 없다는 것은 개인들에게 관용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세상살이가 팍팍해서, 사람만 관용적이면 손해 본다고 생각하기 쉽지 않음을 알지만, 관용적이지 못한 사회가 된다는 것은 삶이 세상살이가 팍팍해지는 악순환의 반복일 것이다. 내가 바라는 것은 "관용으로 선진국이 되자" 아니라 "관용으로 따뜻한 세상을 만들자".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국가의 관용이 아니라 개인의 관용 것이다.

제국의 미래 - 10점
에이미 추아 지음, 이순희 옮김/비아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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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19 23:33

어느 나라의 공산당 창당을 보면서......

 

  세계에 대표적인 반공주의 국가 중에 하나인 곳에서 공산당이 창당되었다고 한다. 대한민국 만큼이나 내부적으로 좌우대립이 많았던 나라에서, 좌파 정권이 물러나고 우파정권이 출범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