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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교육에 대한 고찰 “바보 만들기”

by 은빛연어 2007. 6. 14.
바보 만들기 - 10점
존 테일러 개토 지음, 김기협 옮김/민들레


교육관련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우리나라의 지금의 교육상황과 정책들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다른 이들의 시선을 보면서, 내가 내린 결론은 지금의 교육은 교육이 아니라 사육이다. 한 인간으로써의 존엄성을 키워주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기업에 복종하는 말 잘 듣는 인간을 사육하는 것이 지금의 교육이라는 생각이 든다. 경쟁의 논리만을 앞세워서 더 좋은 사회의 부품이기를 더 좋은 기업의 부품이기를 바라는 지금의 관점과 시선 앞에서 교육의 주체가 되어야 할 학생들은 맹목적인 복종만을 강요 받는다.

   

각각의 개인에게 공부의 목적과 교육의 목적은 더 좋은 직장을 위해, 더 많은 돈을 위해서다. 욕망의 동물인 인간의 본성을 쉽게 바꾸지는 못한다고 하지만 사회적 동물이기도 한 인간의 또 다른 본성은 약육강식의 밀림 사회만이 우리가 살아가는 최적의 사회라고 인식하는 것 같다.

   

이 책의 저자는 사회와 조직을 구분한다. 그래서 지금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사회가 아니라 조직이라고 한다. 인간 개개인의 존엄성이나 가치가 훼손되어 버리고 단지 조직에 맞는 인간들을 위한 사회라는 것이다. 정서적으로 메마르고 탈선하는 아이들이 증가하는 상황에 대해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조직 상황 속에서 인간의 행동은 줄거리가 잘 짜인 대본에 따라 움직이는 배우들의 연기와 자꾸만 닮아 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조직 속에서의 친밀감이란 진짜 사회에서와는 달리 지속적인 힘을 갖지 못합니다." 그러면서 가장 큰 책임은 학교라는 조직에 있다고 한다. 교육을 담당해야 될 학교에서 훈련을 함으로써 애정이라는 것이 사라진 조직을 강요한다는 것이다.

   

얼마 전 라디오 공익광고 중에 아이가 엄마에게 "공부는 왜 해야 되요?"라고 묻는 광고가 있었다. 대답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데 "크면 알아" 또는 "너 잘되라고 그러는 거야" 같은 대답으로 기억난다. 이 광고의 목적은 개그 콘서트의 "대화가 필요해"라는 코너가 풍자하듯이 부모와 아이와의 대화 단절을 비판하는 공익광고였다. 사회를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가정마저 그 역할의 축소 또는 변화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모습이다.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행위가 아이들에게 행해지는 가장 기본 장소인 가정의 급속한 변화로 인해 진정한 교육은 점점 사라지고 학교와 기타 교육기간에 사육되도록 맡겨버리는 지금 부모와 우리 어른들의 무책임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기도 하다.

   

몇 일전 뉴스에서는 학생 수가 넘쳐나서 과밀학급으로 운영되는 학교와 학생 수가 적어서 교실이 남아도는 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했다. 그 두 학교는 사람들이 떠난 시골 학교와 대도시의 학교의 모습을 비교한 것도 아니라, 아파트 단지에서 비슷한 거리에 있는 두 학교의 이야기였다. 좀 더 좋은 훈련소나 사육소를 찾아나서는 부모들의 욕망 때문 이였다면 그래도 조금은 더 씁쓸했을 텐데 아이가 어떤 학교에 다니는지에 따라 아파트 값이 1억이나 달라진다며, 태양 한번 보지 못하고 평생을 먹고 알만 낳도록 만든 좁디 좁은 닭장 같은 과밀학교로 몰아 넣어 버린다. 어쩌면 아이들의 교육을 위한다는 학부모의 헌신과 열정은 위선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위선 앞에서 아이들의 교육은 제자리를 찾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것일지 모른다.

   

부모로써의 의무와 헌신은 더 많은 돈으로 소위 사교육이라고 불리는 더 많은 사육소로 아이들을 보낸다. 자신의 모든 의무는 거기서 끝으로 착각한다. 사육소가 아이들을 건전한 정신을 가진 한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고 착각을 한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스스로 공부하는 법을 알지 못해서 다시 사교육의 사육소를 제 발로 찾아가는 노예근성으로 가득찬 인간으로 훈련되어 간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말이다.

   

지금의 교육의 문제점의 가장 중심은 가정교육의 붕괴라고 많은 전문가들이 이야기 하지만, 그 해결책으로 제시하는 것은 가정교육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학교에 가정교육을 해 주기를 바란다. 교사가 부모를 대신 할 수 없듯 학교가 가정을 대신할 수 없는데, 학교가 교육이 행해지는 장소라는 이유와 직장이라는 조직과 사회에서 종속되어 많은 시간을 저당 잡혀버린 부모들의 현실 앞에서 부모들이 사육소에 더 많은 의지를 하는 것은 필연이라고 생각하고 현실에 순응해버린다.

   

이 책의 저자는 의무교육이 9년인 스웨덴을 예로 들면서 아이들의 훌륭한 교사인 부모와 그 교육의 장소인 가정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그에 반해서 의무교육이 12년인 미국과 일본의 병들고 문제를 양산하는 학교라는 곳의 교육을 비판한다. 학교를 비판하고 교사의 일곱가지 죄에 대해서 말하는 저자가 미국에서 "올해의 교사상"을 세 번이나 수상한 교육의 전문가라면 그가 말하는 가장 훌륭한 교사가 부모라는 것과 가정 교육의 가치는 진실로 다가 온다.

   

천재라고 불리며 2006년에 인하대에 입학했던 97년생 송유근은 학교라는 곳의 훈련이 아니라 부모님이라는 가장 훌륭한 교사로부터 교육을 받았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우리가 학교에 가진 그리고 사교육에 가진 맹목적인 믿음과 의존보다는 진정한 교육에 대한 희망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어떤 사람은 특별한 천재 하나 만을 보고 성급한 일반화를 한다고 말하겠지만….. 틈틈이 홈 스쿨링을 통해 정규교과과정을 뛰어넘고 대학에 입학하는 10대들의 기사와 그들의 자신감에 가득 찬 눈과 이야기 그리고 확신에 찬 자신의 인생의 이야기를 보고 학교라는 사육소와 정규교육이라는 굴레에 힘들어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비교 보면서 이런 결론을 내는 것은 나 하나 뿐일까?

   

이 책의 저자는 "스스로 알게 하는 것이 모든 진정한 앎의 근본이 된다."고 말한다. "저는 믿습니다. 그 아이들이 스스로의 앎을 가지게 되면 스스로를 가르칠 능력 역시 가지게 될 것이라고. 오래가는 가치를 가지는 것은 오직 스스로의 가르침뿐입니다."이라고 말한다. 즉 저자가 말하는 진정한 교육은 "스스로의 의미를 찾아낼 줄 아는 것, 스스로 만족할 만한 목적을 찾아낼 줄 아는 것"이라고 한다. 부모들이 만들어 놓은 목표나 우리 어른들이 만들고 강요하는 목표와 세상은 스스로 의미를 찾아내는 인간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 그리고 그렇게 하지 못했다. 세상의 수 많은 길들 중에 나와 같은 어른들이 봐왔던 길은 사육되어 왔던 길이고 우리가 아이들에게 강요한 길 또한 그들을 사육 시키기 위한 길들이다.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지도 인생을 계획하지도 못하는 사육된 인간을 만드는 교육이 아니 훈련이 지금껏 우리가 생각해왔던 진정한 교육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저자는 지금의 교육제도에 대해서 "지난 150년간 제도교육은 경제적 성공을 위한 준비를 주된 목적으로 내걸어 왔습니다. 좋은 교육이란 좋은 일자리를 얻어 돈을 잘 벌고 많은 물건을 갖게 되는 길이라는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이런 논리에 충실한 많은 사람들이 지금의 우리 교육제도에 대해서 이와 같은 기준으로 바뀌기를 원한다. 교육이라는 목적보다는 더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서 학생을 사육하는 특목고 같은 특별한 사육소를 원하고 경쟁의 논리로 사회를 조직으로 보면서 조직에서 더 좋은 위치를 차지하기 위한 전사를 만들어 내기를 원한다. 경제의 논리로 조직에서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한 기계를 원한다. 창의적인 인재를 원한다고 외치며 교육을 비판하는 수 많은 CEO들이 말하는 교육은 이름 있는 학교에서 더 잘 사육되어진 인간을 만들어 내려는 방식의 한 방편일 뿐이다.

   

배움이란 때가 없고 장소가 없듯이 배움의 대상 또한 위아래가 없고 좌우가 없다. 하지만 늦었다는 이유로 내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배움을 포기하기도 하고, 아랫사람에게 배운다는 것이 부끄럽고 자존심이 상한다는 이유로 배움을 포기하기도 한다. 그와 반대로 가르친다는 것은 전문지식이 있고 배움이 많아야만 한다는 고정관념으로 우리는 교육을 포기하기도 한다. 이 책의 저자는 학교가 독점하고 있는 교육의 권한을 지역사회와 개인 그리고 가정으로 돌려야 진정한 교육이 된다고 한다. 학교의 역할과 권한을 축소하고 교사자격증을 없애라고 한다. 가르치는 것은 아무나 가르치도록 하라고 말한다. 무책임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읽고, 쓰고, 셈하는 것은 100시간이면 충분한데 맹목적으로 학교에 의존하지 말고, 스스로 아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스스로 배움을 갈구하고 스스로를 가르치고 타인과 세상의 자연으로부터 스스로 배움과 앎을 얻을 수 있는 자연인으로써 독립된 존재로써의 인간을 만들어 내는 교육이 창의적인 인간을 만들어 낸다고 한다.

   

우리가 아이들을 부모의 소유물로 보고, 아이들을 하나의 인격체가 아니라 미숙한, 가르쳐야 할, 훈련시켜야 할, 대상으로 보고 있는 지금의 상황에서는 교육이라는 미명하에 행해지는 사육과 훈련은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이젠 아이들을 어른들과 동등한 인격체로써 서로를 배워가고, 서로를 가르쳐간다면, 사육과 훈련이 아닌 교육의 첫 걸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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