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이점이 온다 - 레이 커즈와일 지음, 김명남.장시형 옮김, 진대제 감수/김영사 |
진화하는 인간에 대한 상상을 표현한 만화, 영화, 문학작품 등은 많다. 관점에 따라서 미래를 비관적으로 표현하기도 하고 아주 낙관적으로 표현되어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 모든 작품의 공통된 특징은 인간성에 대한 고민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은하철도 999라는 애니메이션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한 인간의 욕망을 보여준다. 주인공인 철이가 메텔과 999호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하는 것도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함이다. 내 짧은 기억으로는 철이는 영원한 생명을 포기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영원한 생명이라는 것이 생물학적 육체를 버리고 비생물학적 육체, 즉 기계육체로의 변환이었다. 철이는 인간성이라는 관점으로 그 문제를 접근했고, 기계육체는 비인간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았다. 이런 관점은 애니메이션에서 철이의 어머니가 기계육체를 가진 인간들에게 사냥 당했던 모습과 노동의 의미를 상실하고 퇴폐와 향락에만 빠져든 기계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이미 부각되어왔다. 인간성과 비인간성을 나누려는 이분법적 시각이고, 일방적으로 기계인간이 비인간적이고 타락했다는 편협한 시각이 있기는 하지만 과학과 기술의 발달에 따른 작용과 반작용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는 없다.
최근에 인기를 끌고 있는 미국 드라마 "HEROS"에서는 공학적 관점을 벗어나 생명공학적 관점으로 진화한 인간에 접근한다. 특별한 유전자의 작용으로 보통 사람들이 가지지 못한 특수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등장한다. 이야기의 주요 초점은 세상을 구하기 위한 그들의 활동에 초점이 맞춰 있지만, 미래에 관한 에피소드에서는 돌연변이와 보통인간의 갈등이 등장한다. 그런 갈등 구조는 이미 "X-MEN"이라는 작품을 통해서 DNA의 돌연변이로 인한 새로운 인간의 출현으로 보여주기도 했었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라는 말로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가치의 우월성을 논할 수 없다지만,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이 특별하다고 생각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열등감이라는 감정이 어우러지면서 인간에 대한 정의와 인간성에 대한 논의 그리고 차이로 인한 갈등을 보여준다.
미래의 모습에 대한 많은 작품들 속에서 인간성을 나타내는 최후의 보루는 영혼이다.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를 보면 뇌마저도 전뇌라고 불리는 기계가 대체한다. 정체성을 좌우한다고 생각했던 뇌마저도 다른 것으로 쉽게 대체되어 버린다. 뇌 안의 정보는 통신망을 따라 이리저리 이동하기도 하고 사람의 뇌를 해킹해서 한 사람의 인격마저도 좌지우지 한다. 그 작품에서 인간성을 나타내는 것은 영혼이다. 육체라는 껍데기 속에 들어 있는 영혼이 그 사람의 정체성과 인간성을 좌우한다. 아직 영혼이 존재하는지에 대한 과학적인 근거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과학과 비과학을 썩어서 미래의 진화한 인간에 대한 정체성을 고민하는 작품이다.
어린이 애니메이션인 "케로로 소대"의 한 에피소드를 보면 또 다른 과학적 발달에 대한 상상을 볼 수 있다. 충치에 걸린 케로로 하사를 치료하기 위한 소대원들의 활약을 묘사하고 있는 에피소드다. 축소장치를 통해서 세균크기로 줄어든 소대원들이 케로로 하사의 입 속으로 들어가 충치균과 싸움을 벌인다는 내용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될 기술은 인간을 아주 작은 크기로 축소하는 기술이 개발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나노 입자(100nm나노미터:10의 -9승 미터) 크기의 로봇을 이용한 질병치료다. 지금 나노 기술의 많은 부분은 반도체의 제조공정에서 얼마나 작은 공정을 이용해서 회로의 직접도를 높이고 전력소비를 줄이냐에 집중하고 있지만, 나노 기술이 발전하면 신체의 어느 세포를 대체해 나노 로봇과 생물학적 육체가 공존하는 인간이 등장하게 된다. 적혈구나 백혈구를 대체한 나노 로봇이 혈관을 따라 흐르는 것 같은 모습으로…….
앞에서 3가지 미래 기술, 생명공학, 로봇공학, 나노공학을 가지고 진화하는 인간을 이야기 했다. 과연 이런 이야기가 영화나 소설, 애니메이션의 상상으로 끝날지 아니면 100년,200년 뒤의 상황일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이미 GMO라고 불리는 유전자변형 농산물들이 식탁에 오르고 있는 현실에서 유전자를 조작한 인간의 출현은 그리 멀지 않은 얘기 일듯하다. 이 문제는 윤리적 논쟁이 중심으로 부상하면서 치열한 논쟁이 예상될 뿐, 시기의 문제만 남아 있다는 생각이 들뿐이다. 로봇공학과 나노공학의 기술은 아직 생명공학 기술에 미치지 못하고 있지만, 하늘을 날고자 했던 이카로스의 꿈이 이루어졌던 것 처럼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가고 있는 인간의 노력을 본다면 현실이 될 수도 있다는 믿음이 있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했던 한 권의 책을 읽었다. 저자는 논픽션인 책이라고 썼겠지만, 책을 읽는 사람으로써는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를 왔다갔다하며 혼란에 휩싸인다. 기술과 과학을 좋아하고 예찬하는 사람이지만, 레이 커즈와일의 미래예측은 놀랍고 충격적이다. 내용이야 이미 많은 SF작품을 통해서 보여줬던 것이라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을 하면서 읽었지만, 실현 시기에 대한 예측은 충격적이다. 문제를 부정적으로 보느냐 긍정적으로 보느냐에 따라서 보는 시선의 차이는 존재하기 때문에 그의 예측이 무조건 맞다 아니다 거짓말이다라고 한 번에 재단할 수 없지만, 200년도 100년도 50년도 아니라 20~30년 안에 픽션으로만 생각했던 일이 실현될 것이라고 한다면 놀라지 않을 사람이 몇 이나 될까?
생명공학, 나노공학, 로봇공학, 물리학과 같은 지식을 폭 넓게 넘나들며 자신 주장의 근거를 설명하는 저자의 지적유희는 그 분야의 상식이 부족하면 조금은 따라가기는 힘들 정도다. 그렇다고 그렇게 어려운 지식을 나열하는 것은 아니지만, 방대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는 다양한 분야의 연구성과나 연구내용들을 하나하나 언급한다. 그리고 기계가 인간을 초월하는 지점을 "특이점"이라고 한다.
기계가 인간을 초월한다는 것은 기계적 지능이 인간적 지능을 초월하는 것이 그 시작이라고 한다. 컴퓨터의 처리속도와 용량이 전 인류의 뇌의 용량과 처리 속도를 초월하는 시간이 곧 눈앞에 오기 시작하면 기술의 진보속도는 점점 가속도를 붙이게 된다고 한다. 과거의 컴퓨터 기술의 발전속도와 인터넷의 발전속도를 예로 들면서 기하급수적으로 발전을 예측한다. 그리고 그것을 "수확가속도의 법칙"이라고 한다. 현재의 모습을 과거와 비교해 봤을 때를 비교해보면 우리사회의 발전속도는 "수확가속도의 법칙" 즉 기하급수적인 발전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기술에 부정적인 사람은 기술의 해악에 대해 걱정을 하게 된다. 산업이 발전하면 환경파괴와 오염이 발생하고, 지금은 그 여파로 인해 지구 온난화로 인류 생존에 위협을 받지만, 기술의 발전이 지금 나타나고 있는 문제와 환경의 파괴 뿐만 아니라 앞으로 나타날 문제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해결책을 제시해 줄 것이라고 한다. 기술의 긍정적인 시각으로 넘쳐나는 이 책은 다양한 반론에 대해서도 반론을 제기하며 자신의 주장의 정당성을 제기한다. 특이점이 가까이 왔다는 저자의 확고한 신념을 알 수 있다.
불교에서 미륵이 출현하게 되면 세상의 모든 질병은 사라지고 불로장생의 세상이 된다고 했는데 레이 커즈와일의 예측이 맞다면 불교에서 말하는 미륵이 출현하는 유토피아에서 살게 될지도 모른다. 그것이 유토피아일지 은하철도 999에서 묘사한 타락한 사회일지는 알 수 없다. 시대의 정신과 사상은 사회의 변화에 따라 변한다. 지금가지고 있는 나의 가치와 사상이 진화하는 인류가 만들어내는 시대의 정신과 사상에 대한 생각과 충돌하면서 혼란스럽게 만드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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